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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볼거리


 
  외바우10거리..세계문화유산 ..양동민속마을 (...
  
 작성자 : 외바우실짱
작성일 : 2010-09-20     조회 : 1,231  

 
무첨당(無?堂) 보물 제411호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성균생원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로써, 별당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솜씨의 주택이다. 무첨당(無?堂) 해 은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자리한 여강 이씨들의 대종가를 구성하고 있는 안채, 별당채, 사당채 중에서 별당건물이 무첨당이다. 별당건물이기는 하지만 살림채 입구에 있고 규모도 커서 큰 사랑채 격이다. 다시 말해서 대개의 별당이 외부인의 눈에 잘띄지 않는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무첨당은 대문 옆에 자리잡고 있어 큰 사랑채와 같은 느낌을 준다. 요즈음도 제사를 지내거나 문중의 큰 일이 있을때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사당의 위치는 가옥의 오른편 뒤 쪽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의 사당은 왼편 뒤쪽에 세워져 있는점도 특이한 점이다.

건물의 평면은 ㄱ 자형으로 중앙에 6칸짜리 대청을 두고 양옆에 2칸방을 하나씩 두었으며 왼편 앞쪽에 2칸짜리 누마루를 설치하여 건물을 돋보이게 하였다. 높직하게 달아낸 누마루는 바깥쪽으로는 널문을 달아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반면 안쪽 마당으로는 난칸을 달고 개방적으로 만들어 내부를 향해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오른편 방의 바깥쪽에는 툇마루방을 덧붙여 달고 부섭지붕을 붙였는데 영남지방의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무첨당은 막돌바른층쌓기의 높은 기단위에 둥글게 다듬은 초석을 놓고 원주(圓柱)를 세웠다. 삼량(三樑)구조로 되어 있고 대청 전면(前面)에는 아무런 창호(窓戶)가 없으나 뒷면에는 판장문을 달고 벽체를 쳤는데 창방과 장혀 사이의 소로받침을 한 사이사이에는 벽체없이 터있는 것이 특색이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대성헌(對聖軒)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4호
조선 영조 8년(1732년)에 건립되었고,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낸 물와(勿窩) 이재직(李在直)공이 살던 집이다. 대성헌(玳聖軒)이라는 당호(堂號)는 앞산 성주봉(聖主峰)을 마주 보고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루에 걸터 앉아 잠시 쉬며 상념에 잠겨 볼 만하다.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월성 양동마을(중요민속자료 189)에 있다. 18세기 중엽에 세운 목조 가옥으로, 안채·사랑채·행랑채의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ㄱ자집 형태이고, 사랑채와 행랑채는 일자형이며, 3동의 건물이 모여서 전체적으로는 ㅁ자집이다.

무첨당 서북측에 있는 주택으로 조선 영조 8년(1732년)에 건립되었고,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낸 물와(勿窩) 이재직(李在直)공이 살던 집이다. 대성헌(玳聖軒)이라는 당호(堂號)는 앞산 성주봉(聖主峰)을 마주 보고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촌의 중앙 산등성이의 서북방에 자리잡고 있다. 평면은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一자형 문간채가 합하여 튼 ㅁ자형이 되었다.

안채는 북측 꺽임부에 부엌을 두고 동측으로 안방 2칸, 대청 2칸, 건넌방 1칸, 마루 1칸이 배열되어 정면이 7칸이 되었다. 부엌 서측 아래쪽으로는 광과 축사가 1칸씩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이고, 문간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막돌바른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맞배지붕이다. 행랑채는 막돌바른층쌓기의 낮은 기단에 막돌조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역시 홑처마의 맞배지붕이다. 모두 한식기와 집으로 안채는 98년도에 사랑채와 대문채는 99년도에 실시된 양동정비공사 때 보수 정비하였으며, 화장실은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외부는 목조이나 내부는 조적조로 2000년도에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2001년도에 전면쪽에 담장을 세로 설치하였다.

물봉고개

넓은 안강들과 안락천을 내려다 보며 그림같이 서 있는 전형적인 초가삼간이 자립잡고 있는 곳인데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인기가 높다.

이 초가집에서부터 물봉동산까지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절로 느끼게 되는 마치 소설 속의 초가마을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물봉동산

그지없이 정겹고 서정적인 곳으로 나무울타리와 초가의 흙담 뒤로 난 산등성이 황토길은 산책하기에 멋지고, 초가의 처마 밑 길가에는 화사하게 야생화가 피어 있다.

물봉동산에 고요하게 위치한 낮게 선 초가와 울타리, 그리고 황토길을 따라 거니는 상상만으로도 풍요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끔 하는 곳이다.

영귀정(詠歸亭) 향토문화재
이 정자는 문원공 회재 이언적(文元公 晦齋 李彦迪 1491~1553)선생이 젊은 시절 이곳에 모옥(茅屋)을 지어놓고 학문을 수학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정자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건물의 정교함과 솟을대문이 특징이기도 하다.
설천정사(雪川亭舍) 향토문화재
산 언덕 숲 속에 위치한 이 건물은 조선 선조 35년(1602년)에 동방5현의 한 분이신 문원공 회재 이언적(文 元公 晦齋 李彦迪)의 셋째 손자로 설천정 이의활(雪川亭 李宜活 1573~1627)공이 학문을 강학하기 위하여 생시(生時)지은 정자이다.
  공은 1612년 사마(司馬), 16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察訪), 현감 (縣監), 도사(都事), 흥해군수(興海郡守) 등을 역임하였으며, 문중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지산 조호익(芝山 曺好益)선생의 문인으로 저서로는 설천집(雪川集) 등이 있다. 옆으로 ㄷ자 형태의 살림집이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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