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月城) 손씨(孫氏)의 종가이다.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松詹)이라 부르며,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一자형의 행랑채와 ㅁ 자형의 몸체가 전후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행랑채는 정면 8칸 측면 1칸으로서 오른쪽 단에 광을 두고 바로 그 옆에 대문간이 자리잡고 있다. 대문간 우측으로는 마루 1칸과 방 2칸이 붙어 있어 행랑채 구실을 하며 그 옆 1칸 이 방에 불때는 함실이며 그 옆 2칸이 광이다.
안채에 해당되는 부분은 2칸의 부엌과 3칸의 안방이 일렬로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여기서 ㄱ 자로 꺾이어 3칸의 정면과 2칸의 측면, 도합 6칸의 넓은 안대청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옆에 2칸의 건넌방이 붙어 있다. 건넌방 앞에는 1칸이 채 못되는 고방이 있고 그 앞에 1칸의 마루와 1칸의 방이 사랑대청과 연결된다.
부엌 북쪽으로는 장독대가 놓이고 사방 1칸의 헛간이 있다. 사랑 마당 앞에는 동북쪽 높은 곳에 三門이 서있고 그 울타리 속에 사당(祠堂) 3칸이 자리잡고 있다.
행랑채는 낮은 벽돌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각진 기둥을 세워 납도리를 받치고 있다. 소로받침은 없으며 삼량(三樑)구조로 홑처마에 한식기와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몸채는 행랑채보다 상당히 높게 막돌허튼층쌓기한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워 납도리를 받치고 있다. 안채는 막돌바른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각진 기둥을 세웠는데 대청 정면의 기둥만은 모두 원주 4개로 처리하였다.가구는 일반상류주택으로는 예외적으로 삼량구조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대청 전면에는 아무런 창호가 없으나 후면에는 두 짝씩 판장문을 달았는데 문틀 중앙에 설주를 세운 것은 ‘안동 임청각이나 ‘강릉 해운정,‘회덕 동춘당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처마는 홑처마로서 한식기와의 팔작지붕모양 합각을 만들었으나 사랑채와 와서는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안방 위에 다락을 만들고 대청쪽으로 작은 창을 단 것이 이채로운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