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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볼거리


 
  안강외바우에서10분거리..양동민속마을 수졸...
  
 작성자 : 외바우실짱
작성일 : 2010-09-20     조회 : 1,462  

경산서당(景山書堂)
이 서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맏손자 무첨당 이의윤(無?堂 李宜潤)공을 봉향 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물봉골과 안골사이의 능선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다. 헌종(憲宗)조인 1835년경 이웃 안계리에 건립되어 있었던 서당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맏손자 무첨당 이의윤(無?堂 李宜潤)공을 봉향 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835년경에 이웃 안계리에 건립되어 있던 것을 댐 건설로 1970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마을엔 서당이 3개나 되는데 이씨 문중의 강학당과 경산서당 그리고 손씨 문중의 안락정(安樂亭)이 그곳 이다.

서당부분은 강당과, 동재, 삼문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목조 한식기와집인데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양끝으로 각기 방 1칸씩을 두었다. 5칸 모두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동재는 정면 3칸은 측면 1칸인데 중앙에 마루방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두었다. 삼문에는 칸마다 2짝 여닫이 판문들을 달았다.
강당은 어느 정도 다듬은 돌로 바른층쌓기한 높은 기단 위에 장대석으로 상단을 마무리하고 다듬은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의 짜임은 초익공계이나 익공에 쇠서가 2개 뻗어 마치 이익공처럼 보인다.

창방 위에는 소로받침을 놓아 굴도리를 받치는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서 마루대공은 파련각을 하였으며 부연을 단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동재 또한 어느정도 다듬은 돌로 바른층쌓기한 기단이나 상단에 장대석 마무리는 없다.

기둥은 네모기둥이고 도리는 납도리로서, 소로 받침이나 장여는 없으나 우주에서는 첨차모양의 각진 부재를 기둥머리에 끼워 납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맞배지붕이다.
관리사는 안채, 곳간채, 문간채는 l3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목조 한식기와 집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데, 배면 방 부분에 블록조로 반침을 덧달아 내었으며 부엌 좌측도 블록으로 내어 공간을 넓혔다. 곳간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인데, 2000년 양동정비공사 때 보수하였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중앙에 대문칸을 두고 좌우에 창고와 방 1칸씩을 두었다.

육위정

조선 선조24년(1591년)에 세운 건물로써 회재 이언적 선생의 넷째 손자인 수졸당(이의잠)공이 분가한 집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수졸당이 세워진 뒤에는 자손들이 6형제가 태어나고, 자손들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육위 정이라 하였으며, 문중에서는 정자로 사용하고 있다.

수졸당 뒷동산
경산서당에서 수졸당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동산으로 울창한 소나무로 이루워진 무첨당의 뒤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수졸당 반월정원에서의 편안함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듯한 동산으로 진한 소나무 향과 안락함을 느끼며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이 동산은 또한 서당가는 길로서 어찌 서당가는 길이 즐겁지 아니한가 싶은 느낌을 준다.
수졸당(守拙堂) 중요민속자료 제78호

회재 선생의 넷째 손자인 이의잠(李宜潛) 공이 1616년 초창하였고, 그의 호를 따라 수졸당이라 부른다.

북촌 중앙 산등성이의 중간지점 동측 언덕받이에 자리잡고 있는 본 주택은 희재 선생의 넷째 손자인 이의잠(李宜潛) 공이 1616년 초창하였고, 그의 호를 따라 수졸당이라 부른다. 그후 6대손 이정규공이 증축하였다고 하였다 하며, 정조임금 때 도승지와 대사간 대사헌을 지낸 양한당(養閒堂) 이정규(李鼎揆)공이 태어나기도 했다.
ㄱ 자형 안채와 一자형의 아래채, 사랑채, 대문채 등이 튼 ㅁ 자형을 이루었다. 남향한 사랑채와 대문채가 붙다시피 연접되어 있어 동향인 안채로 보면 동향집 남대문을 이룬 셈이다. 대개 동향집의 경우와는 달리 사랑채와 안방의 위치가 반대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이 집의 진입로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있기 때문 이라 하겠다.

사랑채나 대문채에서 보면 안방은 가장 안쪽에 위치하게 되는 원칙이 무리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사랑방 우측은 바로 대문간이 되고 대문간은 一자형 평면의 행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는 실제로 4칸에 그쳤고, 그 동단(東端)에 분리해서 지붕을 조금 낮추어서 2칸의 대문채를 둔 것은 사랑방의 격식과 문간방이 달린 대문채의 격식과의 차이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으며 긴 사랑채의 1칸을 그대로 대문이나 중문간으로 하는 경우보다는 적격으로 보인다. 이 대문채와 사랑채와의 관계처리는 이 집만의 독특한 방식이라 할수 있다.
사랑채는 콘크리트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전면에는 4개의 원주를 세워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안채와 행랑채 역시 콘크리트 기단으로 놓고 방주를 세워 납도리를 받친 민도리 집이다. 지붕은 모두 홑처마의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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