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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안강외바우에서10분거리..흥덕왕릉
  
 작성자 : 외바우실짱
작성일 : 2010-09-20     조회 : 1,469  

신라흥덕왕릉 [新羅興德王陵]
 
 
 
 
요약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六通里)에 있는 신라 제42대 흥덕왕의 능.
 
지정번호 사적 제30호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
시대 835년경
크기 지정면적 6만 1983㎡
종류
 
흥덕왕릉 /
 
 
 
 
 
본문

1963년 사적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6만 1983㎡, 영조()는 835년경이다.

신라 역대 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진 대표적 왕릉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비와 합장한 것으로 되어 있어, 봉분()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 봉분 밑에는 판석()을 세워 둘레돌[]을 삼고, 판석과 판석 사이에 탱주(即)를 세워 판석을 고정하였으며, 위에 갑석()을 얹었고 탱석에 각각 방향을 따라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둘레돌의 주변에 방사형으로 박석을 깔고, 그 주위에 난간을 돌렸다. 난간 기둥에는 상·하 2개의 둥근 구멍을 뚫어 관석()을 끼우게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봉분 4귀퉁이에는 각각 돌사자 1구씩을 배치하였고, 그 전방의 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 각 1쌍이 배치되었다. 또, 능 전방의 왼쪽에는 능비를 세웠던 귀부()가 있으나 손상되었고, 비신()과 이수(螭)는 망실되었다. 이 표식물()의 양식을 보면 봉분 밑의 둘레돌이나 십이지신상의 조각은 원성왕릉의 형식을 따랐고, 돌사자의 배치는 성덕왕릉의 형식을 취하였으며, 문인석 ·무인석의 배치는 성덕왕릉 또는 원성왕릉의 형식과 같다.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해에 왕비인 장화부인()이 죽었는데, 11년 동안 죽은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왕이 장화부인의 무덤에 합장하기를 유언하여 흥덕왕릉에 합장하였다고 하며, 능의 주변에서 ‘’이라 새겨진 비석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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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흥덕왕릉
800*533, 75kb
 
 
흥덕왕릉 무인석
800*533, 129kb
 
 
흥덕왕릉 무인석
800*533, 139kb
 
흥덕왕릉 무인석
400*600, 85kb
 
 
흥덕왕릉 무인석
800*533, 157kb
 
 
흥덕왕릉
800*533, 8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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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역사와 지리 > 문화재 > 한국 > 사적 및 명승 > 경상북도
지역 > 아시아 > 한국 > 경상북도 > 경주시 > 안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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