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67)가 24일 문재인 정부의 증세 기조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한 마디로 “촛불민심의 힘으로 출범한 정부가 증세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정치인들이 수십년간 표를 잃을까봐 증세 필요성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적폐’라고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1순위가 적폐청산인 만큼 인기영합적 행태를 버려야 하는데 새 정부가 증세를 다루는 태도 역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짚었다.
이 명예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김부경 행정자치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제안으로 늦게라도 증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잘 됐지만 (연간 3조8000억원가량 더 거두는) 슈퍼리치 증세로 될 일이 아니다”며 “집권 초기에 대대적으로 증세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퍼리치 증세안에 대해선 “대단히 미흡하고 포퓰리즘적”이라고 꼬집었다.
이 명예교수는 “대선 때도 그렇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 100대 국정과제도 그렇고 증세에 대해 너무 조심했다”며 “결과적으로 말만 그럴 듯 한 셈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는 결과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기조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정권을 시작하는 마당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나라의 틀을 바꾸라고 촛불혁명이 일어났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수동적으로 하는 것은 적폐 청산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명예교수는 늦었지만 더 광범위한 증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명·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복지가 필요하니 세금이 더 필요하다. 세금을 내면 더 많은 혜택으로 돌아온다. 이게 복지국가이니 이 길로 가자’고 해야 한다. 이게 정직한 방법이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증세 기조를 확 바꿔야 한다고 고언했다. 이 명예교수는 “종부세, 법인세, 소득세 그리고 부가가치세 등 4가지 모두 증세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이들 4가지를 모두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지난 19일 100대 국정과제 보고대회를 TV로 지켜보면서 혀를 찼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발표 형식은 멋지던데 재정 지출 절약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며 “TV를 끄면서 ‘이럴 거면 이명박·박근혜 때와 뭐가 다르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