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최저임금이 사상 최대 폭으로 인상됐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결정되자마자 보수야당과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영세상공인들의 불만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어이쿠, 관심은 감사한데 평소에도 그렇게 영세상공인의 삶을 걱정 좀 하시지 그러셨어요?
2018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6470원이었으니 인상률은 16.4%. 인상폭은 1060원이다. 인상폭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이고, 인상률 기준으로도 17년 만에 가장 높다.
이에 대한 보수 언론의 보도는 매우 거칠기 짝이 없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일관성도 공정성도 안 보인다>(한국경제), <中企 챙긴다며 최저임금 1만원?… 불만 쏟아낸 기업들>(조선일보),, <최저임금 인상에 소상공인들 “빚내서 올려주나” 아우성>(중앙일보), <최고 인상한 최저임금, 중기·소상공인 고통 외면할 건가>(동아일보) 등의 보도가 그렇다. 심지어 <최저임금 오르면 서민식당 위생 불량해진다>는 황당한 주장도 문화일보에 실렸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상공인들에게 당장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최저임금 올리면 영세상공인 다 죽는다”는 식으로 갈등을 유발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이 문제를 노동자와 영세상공인들의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문제를 노동자와 영세상공인들의 파저티브섬 게임으로 바꿀 방법이 분명히 있다. 한국 사회가 가야할 방향은 노동자와 영세상공인들의 분열이 아니라, 상생을 향한 협력과 연대라는 이야기다.
영세상공인들이 느끼는 시간차의 해결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영세상공인들의 사업을 개선시킬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소득이 낮은 하위계층의 소득부터 챙겨 그 돈이 소비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월 소득 100억 원인 사람의 소득이 갑절로 는다고 소비가 그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월 소득 100만 원인 사람의 소득이 배로 늘면 이 돈은 대부분 소비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소비는 대부분 영세상공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로 흘러 들어간다.
문제는 이런 소득주도 성장의 실질적 경제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국민들의 소득 증가가 영세상공인들의 실질적 경영 개선까지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영세상공인들이 노동자의 월급을 올려주는 것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바로 이 시간 차이가 영세상공인들이 갖는 불안의 요체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정부가 나서서 영세상공인들의 삶을 알뜰히 보살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이튿날 즉각 3조 원의 예산을 들여 상공인 보호 대책을 발표한 것도 그런 차원의 일이다.
만약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가 다소 더디게 나타나 2019년까지도 영세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정부의 보전은 더 이어져야 한다. 골목상권 보호, 재벌유통기업들의 갑질 횡포에 대한 징벌 등 영세상공인들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대책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대책들이 뚝심 있게 추진되면 영세상공인들의 불만은 사리질 것이다. 장담하는데 노동을 압살하고 재벌 위주로 경제를 꾸리는 체제보다 노동을 존중하고 재벌을 견제하는 경제 체제에서 상공인들의 삶이 무조건 나아지게 돼 있다.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가는 의도
그런데도 보수 언론과 야당이 최저임금 문제를 노동자와 영세상공인의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가는 의도는 분명하다. 고대 로마 이후 지속된 지배자들의 통치 논리인 분할통치, 즉 민중들의 분열을 지배계급의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제로섬 게임은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Lester Thurow)가 1980년 고안해 낸 개념이다. 서로에 따르면 제로섬은 ‘한 사회의 성장이 멈추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갈등은 제로섬 게임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제로섬의 전제는 ‘성장이 멈추면’이다. 더 이상 늘어나는 이익이 없을 때 사회의 갈등은 증폭된다는 뜻이다. 이때가 되면 A의 이익 증가가 B의 이익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문제는 이런 제로섬 상황이 아니다. 영세상공인들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사실 그 분노의 이면에는 “임금상승이 곧 영세상공인 탄압”이라고 거짓을 외친 보수언론의 기만이 깔려있다. 빈곤층의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영세상공인들의 매출도 궁극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와 영세상공인들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연대의 손을 서로 내민다면 이 게임에서 양측이 가질 몫은 더 커진다. 유통재벌의 골목상권 침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횡포를 정부가 나서서 제재할 때 이를 가장 든든히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은 바로 노동계다.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은 바로 그런 노동계의 숙원이었다.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소통과 연대가 해답이다
진화심리학자이자 ≪넌제로≫의 저자인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는 인류는 언제나 연대를 통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넌제로섬 게임을 만들어왔다고 확언한다. 인류는 가끔 서로 상대를 죽여서 내 이익을 키우는 제로섬 게임을 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늘 함께 성장하는 넌제로섬의 길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라이트는 이 넌제로섬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인류가 넌제로섬을 발전시켰던 시점을 보면, 문자의 발달이나 통신수단의 획기적 개선 등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향상이 배경이 됐다.
예를 들어 지주가 소작농의 산출물을 대부분 빼앗으면 소작농들끼리 갈등하는 제로섬 상황이 지속된다. 독재자가 권력과 부를 완전히 독식해도 민중들은 서로를 미워하며 자기 이익을 키우려 한다.
하지만 민중들끼리 소통을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작농들이 조직을 구성하면, 문제의 본질이 소작농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산출물 대부분을 착취하는 지주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노동계와 소상공인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의 본질이 서로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노동자건 영세상공인이건 모두 가난한 이유는 바로 한국사회를 제로섬으로 만든 재벌의 지배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공유해야 한다.
당연히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한 장도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소상공인들을 보호하는 일에 노동계가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 연대의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