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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비엔날레]
올해 미술 올림픽의 주인공은 '정치'
주제 '흥미로운 시대 살아가길'에 맞춰


"예술이 세계 각국의 비극을 막을 수 없으나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며 생각하는 법을 제안할 수는 있다." 올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큰 뼈대는 랄프 루고프 총감독의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인종·환경·난민·젠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을 주제로 치러지는 올해 행사는 사회·정치적 발언의 예술화에 수렴됐다. 이탈리아 인근 바다에서 2015년 침몰한 난민선을 인양해 본전시장 바깥에 세워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미술, 내면에서 외면으로

원래 사회 비판 양상을 띠는 비엔날레 특성을 감안해도 올해는 '당대'를 향해 분출하는 목소리가 분명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황금사자상 주인공은 미국 흑인 영화감독 아서 자파(59)였다. 굵은 체인에 감긴 거대한 검은색 타이어 'Big wheel'(2018) 연작과 백인 우월주의를 고찰하는 영상 'White Album'(2018) 등을 통해 산업사회와 인종 문제를 드러낸다.

①올해 작가별 최고상 황금사자상을 받은 미국 작가 아서 자파 'Big Wheel'. ②DMZ 감시 초소 철거 후 남은 철근을 녹여 만든 탑 '오바드 V' 앞에 선 이불 작가. ③국가관 황금사자상 수상작 리투아니아 'Sun&Sea' 한 장면. "매끈하게 조직된 비엔날레"라는 호평과 "제도권 미술관식 전시"라는 혹평이 함께 나온다. /정상혁 기자
수상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 설치작가 이불(55) 역시 첨예한 정치적 재료를 택했다. 최근 비무장지대 감시 초소 철거 후 나온 철근 잔해(600㎏)를 정부로부터 제공받아 제작한 4m 높이 철탑 '오바드 V'를 본전시에 출품했다. 이불은 "남북 분단의 이유는 이데올로기 대립이고 이데올로기는 현대가 아닌 근대를 상징한다"면서 "작품은 분단이 아닌 근대에 고하는 이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품 제작 당시와 사뭇 달라진 남북 현실에 대해 "얼마 전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무척 착잡했다"고도 했다. 존재감도 약화됐다. 바로 옆에 설치된 중국 부부 작가 순위안·펑위의 설치작 'Dear' 때문이다. 거대 투명 상자 속 고무 호스가 5분에 한 번씩 채찍처럼 미친 듯 날뛰며 굉음을 내 관람객의 시선을 앗아가는데, 이불은 농담조로 "이 상황 자체가 동아시아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은 무거워도 몸짓은 가볍게

올해 '미술 올림픽' 주인공은 생각은 심각해도 몸짓은 경쾌한 선수들이었다. 이날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 전시 'Sun & Sea'는 그 경향의 대표 주자. 기후변화를 다루지만 표현은 수영복처럼 가볍다. 해변 모래사장처럼 꾸며진 전시장에서 수영복을 입은 스무 명 가까운 배우가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누워 뒹굴며 여흥을 즐기는데, 관람객은 2층에서 내려다보며 이들의 행태를 천천히 관찰하게 된다. 심사위원회 측은 "오페라처럼 현대 사회의 휴식을 묘사하는 인상적인 방식"이라고 평했다. 상설 국가관이 없어 매번 전시 구역 외부 건물에 세들어 참가하는 신세지만, 수상 소식이 발표된 이날부터 인기가 치솟아 전시장 인근은 북새통을 이뤘다.

특별상을 받은 벨기에 국가관은 전시장 전체를 인형극 세트장처럼 꾸몄다. 인종·국적·직업별로 다른 옷과 포즈를 한 익살맞은 스무 개의 마네킹을 배치하고 때로 감옥에 넣음으로써 유럽의 '경직된 사고'를 비꼰다. 미술 매체 아트넷은 "이 전시는 '조금 이상하고 불안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라'는 벨기에식 사고방식을 보여준다"고 썼다.

한국관은 여성성을 화두로 진지한 접근을 시도했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모두 영상 장르인 탓에 커튼 등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계단식 논 형태 구조물을 설치해 관람객이 올라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신경 썼지만, 가장 좁은 면적(73평)과 굴곡진 건물 구조를 상쇄할 전시 공간 확보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르면 올해 안에 증축 공사를 진행키로 했다. 관계자는 "시청 측과의 합의는 끝났고 시의회 안건으로 상정되면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 설계로 공사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주변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못하는 조건 탓에 극적인 확장은 어렵지만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 말했다.





[베네치아=정상혁 기자 ti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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