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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3마리 보이죠. 저 놈들이 바로 점박이물범입니다. 녀석들이 누워있는 곳이 바로 물범바위고요.”

백령도 앞 물범바위 일대에서 서식하는 점박이물범. 해양수산부 제공
지난 25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 비는 세차고 파도는 거셌다. 쉼없이 내리는 비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물범바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누워있는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들이 보였다. 녀석들은 작은 어선으로 조용히 접근한 외지인들을 경계하듯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어선에 동승한 해양환경공단 해양생태팀 배진호씨(37)의 설명이 이어졌다. 배씨는 점박이물범의 서식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점박이물범’ 전문가다.

“녀석들의 성격이 예민한 편이거든요. 외지인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녀석들이 저 물범바위를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바다 생태의 건강함과 신비함을 보여주면서 서해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게 바로 물범바위죠.”

백령도 인근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점박이물범. 해양환경공단 제공
올봄 물범바위 일대를 찾은 점박이물범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배씨는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지난해 봄과 비교하면 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강유역환경청과 DMZ자연사랑회 등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19∼20일 물범바위 일대에서 진행된 탐사에서 점박이물범이 185마리 발견됐다. 지난해 6월 물범바위 일대 탐사에서 97마리가 발견된 것과 비교하면 2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봄에는 점박이물범 무리 중에서 흰색 점박이물범 1마리가 포함돼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점박이물범을 기다리고 있는 ‘점박이물범 쉼터’=하지만, 물범바위 인근에 최근 만들어진 점박이물범 쉼터에서 점박이물범을 볼 수는 없었다. 이날 찾아간 쉼터에는 점박이물범 대신 가마우지를 비롯한 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이 조성한 ‘점박이물범 쉼터’. 해양수산부 제공
“당연한 일입니다. 점박이물범이 쉼터를 찾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겁니다. 우선 쉼터 주변의 식생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쉼터 아래쪽에 해조류 등 식물이 붙고, 그 사이로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등 환경이 조성돼야만 점박이물범이 찾아오게 될 겁니다. 쉼터 표면에 물범들이 좋아하는 해조류가 적당이 생겨나는 것도 중요하고요.”

올봄 인간은 점박이물범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이 국내 최대 점박이물범 서식지인 백령도 바다에 점박이물범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인공쉼터를 만든 것이다.

길이 20m, 폭 17.5m의 인공쉼터는 물범바위 인근에 섬 형태로 만들어졌다. 공단은 “점박이물범이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공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석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점박이물범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수면 위에 노출되는 마루의 높이를 4단계로 차등을 둠으로써 점박이물범들이 조석에 맞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공단 관계자는 “해양포유류인 점박이물범은 체온조절, 호흡, 체력 회복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바위 등에서 휴식을 취하는 습성이 있다”면서 “백령도 바다에서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는 물범바위는 자리가 협소해 물범들끼리 자리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점박이물범은 앞발이 짧아 바위에 기어 올라가기보다는 물에 잠겨 있을 때 자리를 확보한 뒤 바닷물 높이가 낮아지면서 서서히 노출되는 바위에 올라앉는 것을 좋아한다. 이때문에 백령도 바다에서 휴식공간으로 활용돼온 물범바위는 자리가 좁아 물범들끼리 자리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았다.

인공쉼터의 등장으로 물범바위 위에서 벌어지던 점박이물범들의 자리다툼이 사라질지, 그 이전에 인간이 ‘쉼터’라는 이름으로 내민 손을 점박이물범들이 받아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양환경공단 박승기 이사장은 “백령도 바다가 국내 최대 점박이물범 서식지로서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공쉼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백령도 점박이물범 쉼터 조성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지난 25일 오후 쉼터 주면에 물고기 등을 방류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양환경공단 제공
■봄이면 찾아오는 점박이물범=점박이물범은 북태평양 온대 및 한대 해역에 주로 서식한다. 국내에서 발견되는 점박이물범은 1~3월 중국 랴오둥만의 유빙(遊氷) 위에서 새끼를 낳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백령도와 황해도 연안, 가로림만 등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서식한다. 먹이활동을 하거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체온조절, 호흡, 체력회복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바위 등에서 휴식을 취한다.

점박이물범은 불법 포획, 지구 온난화에 따른 유빙의 감소, 연안개발에 따른 서식지 훼손 등으로 인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1930년대 약 8000마리에서 현재 1000마리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해수부는 2007년 점박이물범을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했다.

2018년 실시한 서식실태 조사에서 백령도 일대의 점박이물범은 316마리로 파악됐으며, 이중 85%는 물범바위에서 발견됐다. 가로림만에서도 11마리가 관찰됐다.

■10년전 점박이물범 또 찾아왔다=10년전 백령도에 왔던 점박이물범이 지난해 같은 곳을 또 찾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수산부는 점박이물범의 서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08년 인천 옹진군 백령도를 찾았던 점박이물범 3마리가 2018년에 다시 백령도를 찾아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수부 관계자는 “2008년 백령도에서 촬영된 점박이물범 249마리의 사진과 2018년 백령도에서 관찰된 점박이물범의 사진을 하나씩 대조해 3마리가 동일 개체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점박이물범의 몸에 있는 반점의 모양이 모든 개체별로 다르고, 사람의 지문처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매년 촬영된 점박이물범의 반점 형태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점박이물범의 생태를 연구해온 해수부 고래연구센터 김현우 해양수산연구사는 “10년 전에 나타났던 점박이물범이 같은 장소에 또 나타났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백령도가 점박이물범의 서식에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점박이물범을 지키는 사람들=백령도 앞바다의 점박이물범은 지역 주민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점박이물범 지키기’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백령중·고 점박이물범 생태학교 동아리다. 이 동아리는 점박이물범의 서식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보존방안을 당국에 제안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해 미세플라스틱이 물범과 인간을 포함한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심각성을 조사한 뒤 해양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실천방안을 찾는 일 등을 진행했다.

점박이물범 지키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백령중 2학년 이태헌군과 김우빈군이 점박이물범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은 물범과 어민·지역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백령중 2학년 이태헌군(14)은 “저희들이 가장 힘을 쓰는 것은 물론 점박이물범을 보호하는 것”이라면서 “요즘은 점박이물범을 브랜드화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백령도 주민들이 만든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일명 점사모)’도 점박이물범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이 모임은 점박이물범 생태해설 등의 보호활동을 통해 백령도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점박이물범 홍보물을 제작해 백령도를 찾는 외지인 등에게 점박이물범 보호의 의미와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학생과 주민들은 지난 25일 해양수산부·해양환경공단 관계자 등과 함께 점박이물범 쉼터 조성 기념행사를 열고 앞으로도 점박이물범 지키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다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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